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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테라로사 커피, 커피에 대해 파고든 역사와 예술, 그리고 인문학이 기반이 됐죠

우리나라 스페셜티 커피의 명성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린 테라로사 김용덕 대표. 그는 IMF로 다니던 은행을 퇴직한 직후 우리나라 커피 산업의 낙후된 모습을 보고 커피로 한국의 경쟁력을 한층 높이는데 역할을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1999년 처음 커피 시장에 뛰어 들었다.

강릉에 위치한 테라로사 커피공장 본점 내부 모습.

20여년이 지난 현재 과거 그의 다짐은 모두 현실이 돼 있다. 스페셜티 커피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누구나 인정하는 톱 전문가 자리에 올랐다. 또한 그의 커피 브랜드인 테라로사는 국내 유명 레스토랑, 호텔 등지에서 애용되고 있고, 스토어 비즈니스 또한 성공적으로 전개돼 전국 곳곳에 17개 매장을 열고 각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해 많은 사람들에게 커피의 참맛과 그로 인한 행복감까지 안겨주고 있다.

강원도 강릉 구정면에 자리잡은 테라로사 커피공장 본점.

김 대표는 여전히 제대로 된 커피 문화를 알리는데 역할이 남아 있다는 목표를 갖고, 지금도 매일 커피를 마시며 자기만의 공간에서 깊은 사고(思考)를 하거나 전국 곳곳을 누비며 새로운 테라로사를 보여주기 위한 매장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의 테라로사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것은 김 대표의 남다른 철학으로 자리잡은 끊임없이 반복하는 성실함과 거짓을 싫어하고 참된 것을 쫓는 진정성에서 찾을 수 있다.

테라로사 커피공장 본점에 별도 건물로 자리한 테라로사 아트숍.

김 대표의 이 같은 철학은 커피의 역사를 깊게 파고 들게 했고, 결국 깨달은 커피의 역사를 통해 쌓인 예술,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지식은 인문학 전문강사로 활동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테라로사 김용덕 대표는 끊임없이 커피에 대해 파고픈 성실함과 진실된 것만을 추구하는 진정성이 그의 삶의 중심이 된 또 하나의 철학이 됐다.

“커피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됐는데 본격적인 커피 산업이 시작된 것은 오스만투르크시대입니다. 지금의 이스탄불, 당시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투르크에 함락이 됐죠. 그 이후에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커피 문화가 유럽으로 건너간 겁니다. 그때가 본격적인 시작이었죠. 또 당시가 르네상스의 정점을 달리던 시대이기도 했고요. 오스만투크르 역사를 쭉 읽어보면 술탄 메흐메드 2세부터 그 당시 수많은 예술가 그림을 살펴보면 커피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넘어갑니다. 커피를 쫓다가 자연스레 예술에 대해 파고들게 됐고 결국 요즘은 인문학 강의까지 가끔 하게 됐습니다.”

김 대표는 역사 속의 한 인물에 대해, 또는 하나의 작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정의를 내릴 때는 많은 책과 자료를 읽고 분석한 후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는 경격이다. 이를 위해 그는 몸에 벤 자신만의 성실함으로 연도를 중심으로 자료를 공부하고 외우고, 정리하는 것이 습관처럼 돼 있다.

“저는 레오나드로 다빈치를 좋아합니다. 그는 1452년 4월 15일 밤 10시 30분 정도에 태어났죠. 다빈치뿐만 아니라 유명한 몇몇 사람들의 각종 일대기와 연도를 외우고 있어요. 그러면 정리가 잘 되면서 이해도 빠릅니다. 또 누가 거짓말을 하는 지도 알게 되죠.
어떤 와인 전문가가 한 매체에 기고를 했는데 한 와인을 소개하면서 ‘단테’가 ‘로렌초 디 피에르데 매디치’에게 바쳤던 와인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단테’는 1265년에 태어나 1321년에 죽었고, 매디치는 1449년에 태어나서 120년 이상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같은 시대에 살지도 않은 사람에게 와인을 바쳤겠어요?. 거짓말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되죠.”

김 대표는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잊혀지고, 사리질 수 있지만 글은 영원히 남는 것이기 때문에 글은 더욱더 사실을 근거로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김 대표는 어느 매체에 기고를 할 때 자신이 남기는 글이 오차, 오류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아 확인하고, 책을 읽고 난 후 사실을 근거로 글을 작성하려고 노력한다.

“다빈치는 한 번도 정규 인문교육을 받지 않았어요. 하지만 글이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사람의 정곡을 찌르는 훌륭한 글들이 많죠. 다빈치가 죽을 때 남긴 메모지가 1만3000여 쪽이 됩니다.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가 비밀노트로 불리는 다빈치의 메모지를 갖고 있다가 죽고 난 다음 다 분실됐어요. 남아 있는 게 6000쪽인데 빌게이츠는 그 중 일부를 1994년에 3080만달러에 샀을 정도로 그 메모지는 지금 가치가 아주 높습니다.” 이처럼 김 대표는 커피의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서 좋아하게 된 다빈치에 대한 흥미로운 스토리가 무궁무진하다. 그만큼 다빈치에 대해 깊게 파고 들었다는 방증인 것이다.

“율리시스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쟁기(내전기)는 다빈치의 글과 문체가 비슷합니다. 세상을 한번 뛰어 넘은 사람들을 보면 문체가 모두 비슷하죠. 간결하고, 구질구질한 수식어가 없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의 정곡을 찌르는 언어들이 쭉 전개가 됩니다. 레오나드로 다빈치, 마키아벨리, 이런 사람들의 언어가 그래서 다 비슷한 겁니다. 다빈치 다음 인물로 ‘율리시스 카이사르’를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기원전 100년 7월 2일 태어나 기원전 44년에 3월 15일에 56세로 죽었죠. 달력에서 7월, 즉 줄라이(July)는 율리시스 카이사르(영어 이름 줄리어스 시저)가 태어난 달에서 명칭을 딴 것이죠. 그리고 8월, 오거스트는 아우구스트 황제의 이름에서 딴 명칭이고요. 그만큼 카이사르는 세계사에서도 매우 유명한 인물입니다.”

김 대표가 다빈치 다음으로 좋아한다는 영어로 ‘줄리어스 시저’로 불리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제국사의 최고의 영웅, 또는 천재로 일컫는 사람이다. 그는 갈리아 지방(지금의 북이탈리아·프랑스·벨기에)을 정복하여 로마 제국의 토대를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 카이사르의 리더십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 용기 있는 행동 등을 김 대표는 높게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라로사 경포호수점 입구 모습.

◇ 커피 역사 공부가 계기가 돼 고대사의 인물과 예술 작품에 대해 깊게 파고 들게 됐다.
김 대표는 이 같이 좋아하는 인물과 함께 고대사에 대한 다양하고 폭넓은 인문 지식을 쌓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바로 커피에 대한 역사 공부에서 출발했고, 커피에 대한 역사가 세계의 예술ㆍ문화와 직결돼 있다는 것을 김 대표의 설명과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김 대표는 커피 분야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 자리에 오른 것은 커피의 역사와 이론 공부뿐만 아니라, 직접 모든 과정을 체험하며 배운 덕분이다. 초기 그의 커피에 대한 배움의 갈증은 카페에서 마당 쓸기부터 하게 할 정도로 간절하고 강했다.

김 대표의 커피 사업은 1999년 자신이 운영하던 경양식 집에서 조그마한 로스팅 기계로 커피를 볶으면서 손님에게 커피를 내려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당시 지인과 손님들이 ‘커피에 미쳐 가지고, 이거 먹어봐라, 저거 먹어봐라 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짧은 순간 커피에 빠져 들었었다.

테라로사 경포호수점 내부.

김 대표는 막상 커피를 시작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는 생각에 커피를 가르쳐 주는 곳을 찾아 다니며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제일 먼저 찾아 간 곳은 서울의 한 유명 카페였다. 그는 아침 일찍 카페에 도착해 마당부터 쓸었다. 매일 8시가 시작인데 7시에 도착해 마당부터 청소하는 성실한 모습에 카페 사장은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김용덕 대표가 강릉에 자신이 직접 설계, 건축, 시공으로 지은 자택

그렇게 서울의 한 카페에서 커피에 대한 작은 지식을 쌓은 김 대표는 다음으로 당시 커피 산업이 우리나라에 비해 월등이 앞서 있던 일본으로 건너갔다. 유명하다는 커피 공장에 무작정 찾아가 서울에서 배우러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 대표는 그 곳에서도 밑바닥 일부터 도맡아 하면서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의 한 커피공장 골방에서 하루하루 지내면서 그곳의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힘썼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래도 꿋꿋이 버티며 마당도 쓸고 이것저것 청소도 하곤 했죠. 아침에도 청소하고, 밤 11시까지 남아 또 청소했죠. 그러니까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는지 어느 날 하나씩 가르쳐 주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때 알게 된 내용들이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어요. 체계도 시스템도 없는 카페였죠. 하지만 일본이 한국보다 앞선 것은 사실이었고, 일본 카페에서 배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실력을 쌓을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후에도 김 대표는 커피에 대해 배우겠다는 열정은 계속 이어졌다. 2002년 커피 사업에 올인하기 위해 서울의 경양식집을 포함해 모든 것을 접고 지금의 테라로사 본점인 강릉으로 내려갔고, 그 이후에도 일본을 대상으로 커피에 대한 연구는 계속됐다. 일본 아우야마에 가면 작은 건물 2층에 다이브 카페가 있다. 30년 넘게 부부가 운영하면서 온갖 정성을 쏟아 커피를 내려준다.

이후 김 대표는 긴자에 위치한 100년된 커피 숍도 찾았다. 커피 한잔을 내리는데 마치 행위 예술의 한 장면처럼 퍼포먼스가 대단한 곳이다. 다음으로 사자 커피를 방문했고, 고베·오사카·도쿠시마 등 일본 열도를 따라 카페를 돌면서 하나하나 커피 시스템을 이해하고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직접 발로 뛰는 김 대표 특유의 성실함으로 일본의 커피 산업을 이해한 그는 2007년에 커피 산지 코스타리카를 방문하면서 또다시 커피 산업에 대한 큰 비전을 보게 됐다. 코스타리카 이후 브라질, 이디오피아 등 또 다른 산지를 찾아 다니면서 생산 시설에 대한 운영과 생산 과정을 배우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는 다음으로 커피 소비 국가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의 시장 조사를 거치면서 다시한번 우리나라 커피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7년 당시 일본의 주요 거래처였던 와따루 커피의 테라로사 담당자와 함께 세계적인 커피 산지인 코스타리카를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열리는 COE(CUP OF EXCELLENCE) 대회를 처음 보게 됐는데 전 세계 커피전문가들이 점수를 매기고, 커피를 보여주는데 ‘야~어떻게 하면 저렇게 전문가처럼 될 수 있지’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그곳에서 본 COE의장 수지스핀들러, 보스턴의 조지하웰, 그리고 일본의 하야시히다다께 등이 모두 엄청난 수준의 전문가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이들은 오늘날 모든 스페셜티 커피의 시초를 다졌다고 할 정도로 매우 유명한 사람들이 돼 있습니다.”

◇ 일본을 거쳐, 남미·유럽의 커피 산업을 경험한 후 끝으로 미국 인텔리젠시아 커피를 찾았죠.
이처럼 김 대표는 일본과 남미, 유럽 등을 거치면서 커피의 생산과 유통, 판매 등의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세계적인 커피 전문가들을 통해 그들이 바라보는 커피에 대한 인식, 가치, 정신 등을 깨닫게 되면서 커피 전문가로서 실력을 하나씩 쌓을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간 커피로 유명한 곳이라면 모두 찾아 가고 일일이 방문할 정도로 세계 곳곳을 누빈 김 대표는 마지막 지역 미국 시카고를 남겨 놓고 있었다. 김 대표는 2008년에 시카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바로 세계적인 커피 명가 인텔리젠시아 본사를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사전에 메일로 방문 의사를 물어봤지만, 답이 없어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무작정 시카고행 비행기에 올라탄 것이다.

김 대표는 시카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간 곳은 다름 아닌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있는 인텔리젠시아 카페였다.

“그곳에서 인텔리젠시아 커피 한잔을 딱~ 마셨는데 머리에 충격을 받은 느낌이더라고요. 커피가 너무 훌륭한 거예요.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커피 중에서 압도적으로 훌륭했습니다. 완전 충격적이었죠.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올 수 있나?’,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이 맛이 나오는지.’ 등 감동과 함께 마치 식은 땀이 쫙~ 날 정도로 커피 맛이 아주 쇼크였어요.”

김 대표는 당시 이미 강릉 테라로사 본점과 임당정 등 두 개의 지점을 운영했고, 국내 커피 업계에서 나름 인지도가 높은 유명 인사였다. KBS 등 방송에 나올 정도로 커피 전문가로서 인지도를 얻고 있던 시기였다. 이처럼 전문가인 김 대표가 맛을 보더라도 시카고에서 맛본 인텔리젠시아 커피 한잔은 마치 충격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맛이 뛰어났었던 것이다.

“인텔리젠시아 카페 바로 옆에 호텔을 잡았습니다. 잠이 안 오더라고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하고 있어 저런 맛이 안 나오지!, 내가 이러다 망하는 게 아닐까?, 저렇게 훌륭한데 난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지!. 이런 생각들이 밤새 머리 속을 맴도는데 정말 긴장됐어요.”

밤을 설친 김 대표는 아침 5시에 다시 그 카페를 찾았다. 6시에 문을 여는데 그 앞에 서서 오픈 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려고 한 것이다. 5시 반에 불이 켜진 그 카페는 6시에 정확하게 문을 열었고, 김 대표는 첫 손님으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뚫어지라 카페 곳곳을 살폈다고 말했다.

“카페 직원 행동 하나하나를 살폈어요. 어떤 모션을 취하는지, 커피를 당기고, 붓고, 첫 커피 줄기는 어떻게 나오는지 등 모두 지켜봤죠. 아주 디테일하게 초 단위로 과정을 관찰했다고 할 정도로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이렇게 인텔리젠시아 카페를 꼼꼼하게 살펴본 후 김 대표는 본사를 찾아 한국에서 왔는데 본사와 공장을 둘러볼 수 있냐고 물었고, 흔쾌히 승낙을 얻은 김 대표는 시설 전체를 투어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전날 커피 맛에 놀랐던 김 대표는 본사와 공장의 건축 디자인에 또다시 놀랐다고 말했다. 건물의 디자인과 시스템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것.

이와 같이 김 대표가 커피를 제대로 알기 위해 세계 곳곳을 직접 발로 뛰며 끊임없이 노력한 성실함과 진정성의 결과는 결국 세계 커피 업계와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최고 수준의 테라로사 커피를 만들어 내는 결과로 나타났다. 테라로사 커피의 뛰어난 맛과 독특한 공간 디자인이 모두 세계 곳곳을 누빈 경험이 바탕이 됐고, 여기에 김대표의 창의적인 감각이 더해져 만들어진 작품들인 것이다.

◇ 테라로사의 첫 시작은 국가의 커피 경쟁력을 높이고자 한 나름 애국심이 발단이었죠.
현재 테라로사 커피와 김용덕 대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스페셜티 커피계의 대부격인 하야시히다다께는 물론 그의 제자 겐타로 마루야마, 그리고 미국의 인텔리젠시아커피의 제프와츠 등이 모두 인정할 정도로 글로벌 톱(TOP) 수준의 커피, 그리고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요즘 김 대표가 과거 커피 산업에 발을 들여 놓게 된 사업 초기에 가졌던 마음과 커피 전문가로서 커피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 자주 언급하는 내용들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커피 업계에 첫 발을 내디딘 1999년 당시 국내 커피 산업의 현주소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나라 커피산업이 일본보다 너무 낙후된 거예요. 쇼크였죠. 어떻게 한 나라의 특정 산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이렇게 낙후될 수 있을까? 커피를 한 번 해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때 결정을 한 겁니다. 또 ‘내가 하는 커피업이 국가의 경쟁력이 되어야 겠구나’, ‘내가 하는 커피업으로 언젠가는 일본을 뛰어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도록 해야지’하는 목표를 갖게 된 겁니다.” 이 같은 김 대표가 과거에 가진 생각, 다짐, 목표, 이를 다르게 표현해 일종의 애국심이 결국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스페셜티 커피 테라로사를 만든 힘의 원천이 된 것이다.

한편 김 대표는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테라로사를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점을 차츰 확대해 나가고 있다. 최근 서울 강동구에 테라로사 길동점을 열었고, 앞으로 경주, 제주 등에 추가 지점 오픈을 확정한 상태다. 각 지점은 지역과 상권의 규모, 고객의 특성에 맞게 건축해야만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김 대표는 추진 중인 각 지점의 건축 디자인부터 내부 인테리어, 시공까지 모두 총괄 지휘하고 있다.

경주 지점의 경우는 테라로사 외에 새롭게 사람들이 쉬고 머물 수 있는 스테이(숙박) 시설을 처음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김 대표는 스테이 시설을 경험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새로 건축하면서 토목, 설계, 시공, 인테리어까지 직접 진행했다. 강원도 강릉에 자리한 그의 자택은 2층짜리 건물에 수영장과 야외 테니스장이 딸린 유럽의 건축 양식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건축물로 아늑하면서 세련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김용덕 대표의 자택에 딸린 수영장.

이처럼 이제 테라로사가 커피와 베이커리를 파는 곳을 넘어 커피를 마시고, 음식을 나누고, 쉬고 머무를 수 있는 토털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는 시설로 진화를 거듭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 들어설 테라로사의 새로운 공간이 더욱 기대되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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