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해냈다. 최대 숙원이던 ‘적자 탈출’에 성공했다. 이 회사가 지난 1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3분기 실적 보고서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쿠팡은 올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한 6조8383억원(분기 평균환율 1340.5원)을 기록했다. 원화 기준 매출은 사상 최대 규모이고, 달러 매출은 지난해 46억4470만 달러와 비교해 10% 증가한 51억 133만 달러였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이익 지표였다. 쿠팡의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3653억원(3억1511만달러) 손실에서 1037억원(7742만 달러)으로 흑자 전환했다. 쿠팡이 분기 영업이익이 흑자를 기록한 건 로켓배송을 출시한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1215억원(9067만달러) 흑자를 냈다쿠팡의 흑자전환을 이끈 것은 본업인 이커머스 사업이다.
쿠팡은 올 3분기 ‘프로덕트 커머스’ 사업에서 3267억원(2억3922만 달러)의 조정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전 순이익)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엔 1612억원(1억1824만 달러) 손실을 냈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기세로 이익이 개선된 것이다.
쿠팡이츠, 쿠팡플레이 등 신사업(Developing Offerings)의 실적도 훨씬 나아졌다. 올 3분기 신사업 조정 에비타는 4430만 달러(594억원)의 손실을 냈지만 전년 동기 8920만 달러(1215억원) 손실보다 적자폭이 약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쿠팡의 한국 이커머스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다. 3분기 기준으로 쿠팡에서 한 번이라도 물건을 구매한 적 있는 활성고객수는 1799만2000명으로 지난해 3분기(1682만명)보다 7% 늘었고, 직전 분기(1788만명)와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활성고객 1인당 매출은 284달러(약 38만8000원)로 전년 동기보다 달러 기준으로는 3%, 원화 기준으로는 19% 증가했다.
한국 쿠팡 지분 100%를 보유한 미국 상장법인 쿠팡 아이엔씨(Inc.)의 김범석 의장은 실적 발표 후 컨퍼런스 콜에서 “기술, 풀필먼트, 라스트마일을 통합한 물류 네트워크에 지난 7년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결실”이라며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로 수요를 예측해 신선제품 재고 손실을 지난해보다 50%가량 줄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의장은 “입점 파트너 70% 이상이 연 매출 250만 달러 미만 중소상공인”이라며 “쿠팡이 성장함에 따라 입점 소상공인은 지난해보다 25% 늘어난 20만여명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거라브 아난드 쿠팡 최고재무책임자(CFO)도 “비즈니스 전 분야에서 9100만달러 규모의 순이익을 달성했다”며 “기술·인프라 개선과 공급망 최적화로 수익성을 개선했다”고 말했다.
◇ 영업이익ㆍ당기 순수익 흑자 전환,주가도 상승세 전환

쿠팡 주가는 6개월 전보다 50% 넘게 상승했고, 1개월 전과 비교하면 20% 가까이 올랐다. 주당 12달러를 밑돌던 이 회사 주가는 현재 20달러에 근접했다.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과 달리 수익성 개선에 성공하면서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론 배론 배론캐피털 창립자는 지난 2분기 넷플릭스 같은 기술주를 팔고 쿠팡 주식 555만7569만주를 추가 매수하면서 현재 678만906주를 보유 중이다.
쿠팡의 미래가 그만큼 밝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쿠팡의 흑자 전환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간 쿠팡을 향해 쏟아지던 의심의 눈초리를 일단 걷어냈기 때문이다.
과거 적자규모를 새롭게 경신할 때마다 쿠팡은 과감한 투자를 멈추기 않았다. ‘계획된 적자’라며 마이너스 경영을 변호했다. 세계 최대의 이커머스 기업인 아마존처럼 투자를 먼저 진행해 시장을 장악하고, 나중에 흑자를 내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아마존은 창업 이후 6년이 지난 2000년에도 14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물류센터 건설과 직접배송 등에 투자하며 창업 8년만인 2002년 매출 39억 달러와 함께 첫 흑자를 냈다. 물류와 배송에 투자하지 않으면 당장 흑자를 낼 수도 있지만, 그러면 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김범석 의장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리고 이번 3분기 흑자 전환으로 김범석 의장의 ‘계획된 적자’가 현실이 됐다. 가격을 낮춰 고객을 모았고, 판매자도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규모의 경제’가 이뤄진 셈이었다.
앞서 김범석 의장이 설명했듯, 물류 인프라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통했다. 물류 허브를 다 짓고 출고 시스템도 자리 잡았으니 더 이상 어마어마한 지출이 나갈 일이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더 빠르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환경이 마련됐으니, 이제 투자한 돈을 다시 회수하기만 하면 되는 셈이라는 설명이다.
올해 들어 대만 시장에도 진출하면서 사업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 6월부터 대만 전역에 쿠팡 로켓직구 서비스를 시범 운영해왔다. 식품, 화장품, 건강식품, 유아용품, 가전·생활용품 등 500만개 이상의 제품이 판매 중이다.
대만은 이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뿐 아니라 한국 제품의 인기가 높아 잠재력이 높은 시장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 국제 무역국자료에 따르면 대만은 인터넷 이용률이 세계적으로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지난해 이커머스 부문 성장률 24.5%를 기록했고 인구밀도는 1㎢당 673명으로 한국보다 높은 반면 이커머스 보급률은 낮은 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매 분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먼 미래의 목표를 내다본 김범석 의장의 혜안 덕분에 쿠팡이 혁신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전국 단위의 익일 배송망 서비스 구축을 눈앞에 둔 쿠팡의 기세가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확대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 시장에서도 이와 같은 쿠팡의 전략은 지금까지 경험이 더해져 안정된 성장을 펼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여전히 리스크 상존, 높은 수수로율ㆍ불공정 거래ㆍ노동자 안전

물론 이렇게 승승장구할 것만 같은 쿠팡에도 리스크는 여전하다. 현재 쿠팡은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플랫폼 규제의 주요 타깃이다. 최근에도 경쟁당국인 공정위로부터 뼈아픈 지적을 받았다.
11월 23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6대 유통업태 주요 브랜드 34개의 판매수수료 등 서면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입점업체의 실질 수수료율이 상당히 높은 업체로 꼽혔다. CJ온스타일(34.1%)에 이어 쿠팡(29.9%)이 2위를 차지했다. 추가 비용 비율을 따져봐도 쿠팡(7.9%)은 GS25(8.1%) 다음으로 높았다. 쿠팡의 실질 수수료율과 추가 비용 비율은 온라인쇼핑몰 평균인 10.3%, 5.5%보다 크게 높았다.
공정위는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의 치열한 경쟁,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유통-납품업계상생 협약, 판촉 행사 활성화, 그간의 판매수수료 정보 공개와 조사·제재 등으로 실질 수수료율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이지만, 유통 환경의 변화로 크게 성장한 온라인쇼핑몰 분야에서는 거래금액 대비 판매 촉진비 등 추가 비용 부담 비율이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쿠팡이 판매수수료율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쿠팡은 지난해 8월엔 ‘납품업체 대상 갑질’을 이유로 과징금 약 33억원을 부과받기도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쿠팡은 2017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101개 납품업체를 상대로 경쟁 온라인몰에서 판매가격을 인상할 것을 요구했다.
납품업체가 11번가 등 경쟁 온라인몰에서 같은 제품을 더 싸게 팔면 최저가 전략을 쓰는 쿠팡도 제품가격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납품업체가 경쟁 온라인몰에서 할인 전략을 펴서 쿠팡의 마진이 줄어들면 쿠팡은 납품업체에 마진 손실분만큼 광고를 하도록 요구했다.
공정위는 쿠팡이 2018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할인쿠폰 발급 행사를 하면서 납품업체에 할인비용 전액을 부담시킨 행위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르면 유통업체는 판매촉진 비용의 50% 이상을 납품업자에게 전가할 수 없다. 공정위는 납품업체와 ‘연간 거래 기본계약’으로 사전에 약정하지 않고 판매장려금 104억원을 받은 행위도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쿠팡이 이에 불복해 올해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불공정거래로 시정명령도 받았다. 과거 쿠팡은 같은 상품을 가장 저렴하게 올리는 판매자에게 해당 상품의 매출을 몰아주는 ‘아이템위너’ 제도를 운영했다. 이를 위해 판매자와 체결하는 약관에 ‘쿠팡이 판매자의 상호나 상품 이미지 등 콘텐츠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조항을 뒀다. 그리고는 판매자들이 제공하는 상호나 상품 이미지를 사용해 아이템위너 제도를 운영해왔다.
쿠팡의 아이템위너 제도는 불공정하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 5월 참여연대가 이 사안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단돈 1원이라도 싸게 파는 판매자가 이전 판매자의 상품 이미지와 고객 후기 등 모든 것을 갖도록 하는 건 저작권 및 노하우 탈취 행위에 해당한다”면서 “결국 판매자 간 치킨게임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며 쿠팡을 ‘약관규제법’ ‘전자상거래법’ ‘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경쟁당국인 공정위와 사사건건 부딪히다 보니 문제 플랫폼으로 낙인찍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상당하다.
끊이지 않는 과로사 논란도 문제다. 2020년부터 현장 근로자의 사고 재해가 잇따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에도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일하던 50대 노동자가 뇌출혈로 사망했다.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쿠팡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류센터 내 강도높은 노동 환경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판단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 현장에서 일하는 게 처우는 나쁘지 않지만 노동 강도가 상당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이라면서 “다른 기업에서보다 쿠팡에서 이런 사고가 빈번하다는 게 그 증거”라고 설명했다.
◇ 김범석 의장 오너리스크, 미국 국적으로 각종 규제 회피

아직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지만, 쿠팡에도 한국 재벌 기업들이 겪고 있는 ‘오너리스크’가 있다. 지난해 6월 17일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쿠팡 물류센터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건 유명한 사건이다. 만 하루를 꼬박 넘겨서까지 불길을 못 잡을 정도로 컸던 화재는 안타깝게도 소방관 한 명이 사망하는 인명 피해까지 발생시켰다. 약5000억원대 손실이 난 이번 사고의 불똥은 김범석 의장에게 튀었다.
화재가 발생한 17일, 쿠팡은 김 의장이 법인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에서 사퇴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곧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상 대표로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직을 급작스레 사퇴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엔 쿠팡탈퇴 방법을 공유하는 메시지와 탈퇴인증샷이 SNS의 최대이슈가 되기도 했다. 쿠팡은 지난해 미국 증권 시장 상장을 위해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기업 경영의 주요 리스크 중 하나로 꼽았다.
사건은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언제든 김범석 의장을 향한 비판이 고개를 들 수 있다. 현재 쿠팡은 김범석 의장이 좌지우지하는 구조다. 김 의장이 쿠팡 미국 법인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과반을 혼자서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의결권은 76.2%에 달한다.
김 의장의 실제 지분율은 9.9%에 불과하지만, 쿠팡이 상장할 때 그에게 강력한 차등의결권(1주에 29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김범석 의장이 쿠팡 한국 법인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왔음에도 영향력은 그대로다. 쿠팡 미국 법인이 쿠팡 한국 법인을 100% 지배하는 구조다. 쿠팡페이, 쿠팡풀필먼트서비스 같은 계열사 역시 한국법인의 100% 지배 아래 있다.
김범석 의장은 한국 태생의 미국인 경영인인데, 이를 싸늘하게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김범석의장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벌 총수 지정에서 빠지게 됐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자산총액 5조원이 넘는 기업을 ‘공시대상 기업 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그리고 해당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일인(총수)’을 꼽는다. 대기업과 총수, 두 축을 기반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상호출자, 채무보증, 의결권 등을 제한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해부터 자산총액 5조원을 넘어서 대기업집단에 들어갔지만, 김범석 의장은 동일인으로 지목되지 않았다. 김범석 의장이 미국 시민권자라 규제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원래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4촌 이내 친족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의 지분 소유현황 등 지정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쿠팡은 쿠팡의 계열사 지분 현황만 따지면 된다. 오너일가 일감 몰아주기를 포함한 각종 사익편취 규제에서도 자유롭다. 계열사가 각종 공시·신고 의무를 위반하면 총수가 함께 고발될 수도 있는데, 이런 위협에서도 마찬가지 자유롭다. 이 때문에 업계 일부에선 ‘역차별’이란 비판을 쏟아냈고, 현재 공정위도 외국인의 동일인 지정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김범석 의장의 사업 확장의지가 크다 보니 곳곳에서 부작용과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내부적으로 시스템이나 경영 철학을 차분하게 가다듬지 않으면 더 큰 경영리스크를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