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기간, 수많은 유통기업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 불을 지폈다. 원래 유통업계는 M&A가 자주 일어나는 업종이 아니다. M&A가 기업의 취약한 사업 부문을 강화하고 시장 지배력을 단번에 높일 수 있는 좋은 경영 전략인 건 맞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큰 게 사실이다. 전통적 유통기업들은 보수적 성향에 선뜻 M&A 시장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 조짐을 보인 지난해부터 크고 작은 M&A 결과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시장은 분주했다. 여기에 쿠팡이나 네이버같은 기술 기반의 새 경쟁자까지 유통강자로 등극해 업계 흐름을 변화시키고 있다. 쿠팡은 나스닥 기업공개에 성공해 국내 이커머스 생태계를 좌우하고 있고, 네이버는 검색을 넘어 유통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교보증권 조사에 따르면 네이버와 쿠팡은 각각 국내 이커머스 거래액 점유율 17%, 13%를 차지한 선두권 사업자다.
근래 백화점과 마트가 전통 소비 채널로 밀려나고 온라인 커머스, 스타트업이 시장 트렌드를 이끄는 업계 헤게모니 이동이 이뤄졌다. 기존 유통 기업 입장에서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신세계는 이베이코리아와 SSG닷컴의 거래액을 합산하면 25조원으로 쿠팡(21조원)을 제치고 네이버쇼핑(27조원)에 이은 2위 사업자가 된다.
최근에 유통업계 M&A 시장을 선도한 건 기존에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유통 대기업들이었다. 맏형 롯데쇼핑은 지난해 3월 중고나라에 300억원을 투자하면서 빅딜의 신호탄을 쐈다. 20조원 규모로 성장한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중고나라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2003년 인터넷 카페로 시작해 2013년 법인 전환했다. 2016년에는 모바일 앱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회원 수는 약 2300만명으로 중고거래 업계 최대로 꼽힌다.
롯데는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9.1% 감소하는 굴욕을 당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악영향에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채널의 매출이 감소한 가운데, 온라인에선 별다른 힘을 내지 못했다.
◇ 롯데, 중고나라 이어 한샘·한국미니스톱 투자

하지만 롯데는 어려움 속에서도 움츠려들지 않았다. 지난해 9월엔 한샘 인수를 진행하고 있던 사모펀드 IMM 프라이빗에쿼티가 한샘 지분·경영권 인수에 참여할 전략적 투자자로 롯데쇼핑과 손잡았다. 전체 1조원이 넘는 거래에서 롯데 쇼핑이 3000억원가량을 출자했다.
IMM 프라이빗이 롯데를 전략적 투자자로 선정한 건 사업 시너지가 클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특히 유통업계에서 가구를 비롯한 리빙은 핵심 콘텐츠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경쟁사인 현대백화점은 현대리바트를 거느리고 있고, 신세
계 역시 2018년 까사미아를 인수해 계열사로 두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오히려 후발주자에 속하는 롯데 입장에선 M&A를 통해 단숨에 이들을 쫓을 수 있고, 사업 포트폴리오도 확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한샘이 연 매출이 2조원을 훌쩍 넘는 국내 대표 인테리어 가구 업체로써 특히 집 전체를 시공하는 ‘토털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유일한 기업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해가 바뀌어도 롯데는 베팅을 멈추지 않았다. 올해 초엔 롯데지주가 한국미니스톱 지분 100%를 3133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경쟁사 신세계 이마트24의 추격을 뿌리침과 동시에 GS25와 CU에 이어 편의점 ‘빅3’의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된 것이다.
시너지는 단순히 편의점 숫자를 늘리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미니스톱의 2600여개 점포와 12개 물류센터를 통해 퀵커머스(즉시배송) 거점 확대를 꾀할 수 있다.

퀵커머스는 롯데가 힘을 쏟는 분야다. 롯데쇼핑은 최근 롯데온의 새벽배송 서비스를 중단하고, 퀵커머스 서비스인 ‘바로배송’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바로배송은 롯데마트와 롯데슈퍼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2시간 내에 배송하는 게 특징이다. 전국에 있는 롯데 관련 매장을 물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때문에 미니스톱의 인수는 퀵커머스 역량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 신세계, SK와이번즈·W컨셉·이베이코리아 인수
신세계그룹 역시 팬데믹 이후 전방위적인 M&A로 사세 확장을 꾀했다. 지난해 2월 이마트가 SK텔레콤으로부터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 지분 100%와 연습장 등 토지 및 건물을 1353억원에 인수해 ‘SSG 랜더스’를 출범시켰다.
야구단 인수는 얼핏 유통사업 역량 강화와 무관해 보이지만, 신세계의 속셈은 남달랐다. 프로야구 관중 주축이 젊은 세대이고, 여성 관중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을 보고 미래 충성고객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 담긴 것이다. 지난 2016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스타필드 하남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유통업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평일과 주말에 유통채널의 잠재적 고객을 흡수하는 야구장 역시 신세계의 경쟁 상대라는 설명이다.

정 부회장은 평소 유통업계가 쇼핑, 여가, 외식,문화생활 등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센터’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이마트는 야구단을 인수한 후 전방위적인 야구 마케팅에 나섰다. 야구장에 스타벅스,노브랜드 버거 등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계열 브랜드를 앞세운 게 대표적이다. SSG랜더스 야구단을 모티브로 한 ‘SSG랜더스 라거’ ‘슈퍼스타즈 페일에일’ ‘최신맥주 골든에일’ 등 수제맥주 3종을 출시하거나, 쓱 배송이나 새벽 배송 상품을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야구단의 인기 선수의 유니폼을 경품으로 증정하기도 했다.
향후 인천 청라에 돔구장 건립까지 계획하고 있다. 연면적 약 50만4250㎡ 규모의 부지에 쇼핑몰, 테마파크, 호텔 등을 갖춘 대규모 라이프스타일센터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4월엔 온라인쇼핑 자회사 SSG닷컴을 내세워 온라인 패션몰 W컨셉을 2650억원에 사들였다. 여성 고객에 특화한 온라인 편집숍인 W컨셉은 당시 회원수 500만명을 확보한 여성 쇼핑몰 1위 플랫폼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패션사업을 강화해 이커머스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넓히겠다는 신세계의 목표를 달성하기엔 충분히 매력적인 매물이었다는 평가다. 쿠팡과 네이버에 빼앗긴 여성 MZ세대를 미래 충성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고, 이들이 향후 소비를 주도할 세대란 점에서 마케팅 측면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W컨셉은 SSG닷컴을 모회사로 맞이한 이후 실적도 개선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0억원으로 전년(5억원)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6월엔 이베이코리아 지분 인수를 성사시키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마트가 인수한 이베이코리아지분 80%의 가격은 3조4404억원으로 신세계그룹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의 딜이자, 그해 상반기 이뤄진 기업 M&A 중 가장 큰 거래였다.
그만큼 이베이코리아의 몸집이 컸다. G마켓과 옥션, G9 등의 거대 이커머스 플랫폼을 다수 운영하는 오픈마켓 사업자라 당연한 일이었다. 이마트가 인수하기 직전 해인 2020년, 이베이코리아의 매출은 1조3000억원, 영업이익은 850억원이었다. 거래액만 17조2000억원을 달성했다. 쿠팡을 비롯해 대부분의 이커머스 업체가 적자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이베이코리아는 16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밸류 판단에 반영됐다.
◇ 신세계, 이커머스 패권 장악 기대ㆍ스타벅스 지분 확대

무엇보다 오프라인 유통에서 강점을 지닌 신세계가 국내 이커머스 업계 3위 사업자인 이베이코리아를 삼키면서 얻는 시너지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됐다. 온·오프라인 통합으로 따지면 국내 최대 유통 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이커머스 업계의 후발주자였던 SSG닷컴에 이베이코리아를 합하면 쿠팡을 제칠 수 있게 된다.
이베이코리아와 SSG닷컴의 합산 거래액은 25조원으로 쿠팡(21조원)을 제치고 네이버쇼핑(27조원)에 이은 2위 사업자가 된다. 강력한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함께 보유한 업체는 사실상 최초이기 때문에 향후 국내 유통시장을 뒤흔들 게 분명해 보인다. 신세계가 지난해 7월 스타벅스커피코리아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도 큰 사건이었다. 그간 스타벅스코리아를 5대 5로 공동지배해 왔는데, 미국 스타벅스 본사로부터 지분 17.5%를 추가 인수했다.
스타벅스는 전세계 커피 음료 시장의 부동의 1위 업체이지만, 한국에서의 성장세는 그 중에서도 도드라졌다. 1999년 이대 1호점을 내며 한국 시장에 진출한 스타벅스코리아는 20년 만에 연매출 2조원을 일궈냈다. 2000년 10개에 불과했던 지점 수는 전국 1600여개로 불어났다. 국내에선 실적과 브랜드 경쟁력 면에서 커피 분야 후발주자가 쫓아오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
신세계는 향후 스타벅스의 상장을 추진할 전망인데, 성장성과 상장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어 투자자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마트는 스타벅스커피코리아가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실적이 크게 개선되는 효과도 얻었다.
신세계는 올해 들어서서는 벤처캐피탈 자회사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통해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투자를 단행했다. 이번 투자를 통해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상생, 발전하는 산업생태계를 조성한다는 포부다. 최근엔 고배를 마셨지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IFC몰 인수전에 뛰어들기도 했다.

◇ GS그룹, 부릉ㆍ요기요 지분 확보와 쿠캣 인수
이 외에 롯데와 신세계만큼이나 활발한 M&A에 나서고 있는 회사가 GS그룹이다. 지난해 4월엔 GS홈쇼핑을 통해 물류 전문 스타트업 메쉬코리아 지분 19.53%를 인수해 네이버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메쉬코리아가 운영하는 이륜차 배송 대행 서비스 ‘부릉’은 ‘생각대로’, ‘바로고’와 시장을 3등분하고 있다. 전국 오프라인 매장 1만5000여개와 메쉬코리아의 주요 도심 물류 거점 400개를 활용해 당일배송, 즉시배송을 확대하겠다는 포석이었다.
같은 해 8월엔 재무적 투자자인 어피너티에쿼티 파트너스, 퍼미라와 공동으로 구성한 컨소시엄을 통해 배달 앱 ‘요기요’를 운영하는 유한회사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DHK)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GS리테일은 30% 지분에 해당하는 2400억원을 투자했다.
GS리테일은 퀵커머스(즉시 배송) 시장을 노리기 위해서 지갑을 열었다는 분석이다. 국내 배달업계 2위 업체인 요기요를 인수하면 GS25, GS더프레시, 랄라블라 등 1만6천여개 소매점과 60여개 물류 센터망이 결합된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란 전략적 판단을 했다는 것.

실제로 두 회사의 시너지는 최근 드러났다. GS리테일은 지난 5월 요마트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요마트는 축산, 수산, 과일 등 식료품과 생필품 등을 주문 후 한 시간 내에 보내주는 서비스다. 요기요 앱을 통해 주문하면 GS리테일에서 운영하는 슈퍼마켓 GS더프레시에서 상품을 보낸다. 요마트에선 GS리테일이 운영하는 전국 350여개 GS더프레시 매장이 도심형물류센터(MFC)역할을 수행해 별도 물류 센터 구축을 위한 추가 투자 없이도 광역 배송망 구축이 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어 지난해 11월엔 GS리테일과 GS홈쇼핑의 통합 법인 출범 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2025년까지 연간 취급액 25조원을 달성하고, 디지털 커머스 사업 규모를 5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시킨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GS리테일은 해가 바뀌고도 계속해서 M&A 시장에 눈독을 들였다. 올해 초엔 푸드 스타트업 ‘쿠캣(COOKAT)’을 300억원에 삼켰다. 쿠캣은 미디어 채널 ‘오늘 뭐 먹지’와 이커머스 플랫폼‘쿠캣 마켓’을 운영하는 회사다. GS리테일 측은 MZ세대를 겨냥해 개발한 상품을 편의점 GS25, 슈퍼마켓 GS더프레시, 홈쇼핑 GS샵 등 1600여개 플랫폼과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계획이다.
◇ 카카오, 지그재그 인수로 단번에 이커머스 강자 등극

지표가 개선되고 있다.
매수자가 유통기업이 아니더라도 이들 유통기업을 삼키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 카카오가 국내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크로키닷컴을 인수한 것도 큰 사건이었다. 카카오는 ‘카카오스타일’을 운영하는 카카오커머스의 스타일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해 기술 기반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크로키닷컴과 합병했다.
지그재그는 고객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카테고리 별로 쇼핑몰을 분류해서 보여주고, AI 기술을 활용해 선호 쇼핑몰, 관심 상품, 구매 이력 등에 따른 개인 맞춤형 추천 상품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강점이다.
4000곳 이상의 온라인 패션 쇼핑몰과 2030 충성고객을 확보한 지그재그를 통해 이커머스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카카오는 크로키닷컴 인수를 통해 단숨에 패션 이커머스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기업으로 등극했다. 나아가 카카오 측은 글로벌 패션 사업 진출 계획도 발표했다. 카카오가 보유한 글로벌 콘텐츠와 시너지를 내 향후 물류 접근성이 용이한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글로벌 패션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다.
이처럼 많은 유통 기업이 ‘릴레이 M&A’를 벌였지만, 모든 거래가 장기적 시너지 확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성공적인 M&A는 경쟁자를 단숨에 압도하는 기회가 되지만, 자칫 잘못하면 기업의 체질을 약화시키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 특히 실제 가치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기업을 인수하거나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자금 조달 범위를 벗어난 무리한 인수에 나설 때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이뤄진 거래에선 롯데쇼핑이 투자한 한샘의 입지가 위태롭다. 한샘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100억원을 기록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60.3%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5260억원으로 4.9% 줄었다. 특히 홈리모델링 분야 매출은 179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3.7% 감소했다. 리하우스 분야는 1364억원으로 10.5% 줄었고 키친·바스가 431억원으로 22.5% 마이너스 신장했다. 주택 시장이 얼어붙은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M&A 업계 관계자는 “이해득실을 따지며 치밀하게 계산기를 두드린 끝에 내린 결론이 승자의 저주로 되돌아올 수 있고, 혹은 무모해 보였던 투자가 선견지명의 결단으로 칭송받기도 한다”면서 “지금은 시너지를 보이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지만 글로벌 경기 전체가 침체될 것으로 전망되는 요즘 같은 시기엔 부메랑이 돼 기업 전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