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지역기반 커뮤니티 플랫폼 ‘당근마켓’이 서비스명에서 ‘마켓’이라는 단어를 뗐다. 대신 이름을 ‘당근’으로 바꾼 것이다. 서비스 런칭 8년 만에 일이었다.
당근엔 ‘당신 근처’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담았다. 특히 새로워진 당근 로고에는 당근이 추구하는 ‘지역(Local)’, ‘연결(Connect), ’삶(Life)‘ 세 가지 핵심 가치를 담았다. “리브랜딩을 통해 하이퍼로컬 비전에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하이퍼로컬이란 사전적으론 ‘아주 좁은 지역(local)’이란 뜻이다.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시·군·구 등 기존의 로컬보다 더 좁은 지역, 그러니까 진짜 ‘우리 동네’로 좁혀지는 중인데, 당근마켓은 이를 기반으로 한 사업을 더욱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름을 바꾸면서 지역 생활 커뮤니티로써의 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하고 속도감 있는 비즈니스 전개는 물론, 내실 있는 성장을 이끌며 하이퍼로컬 사업 로드맵을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황도연 당근 대표는 “이번 리브랜딩을 통해 서비스 비전과 방향성이 사용자에게 더 명확하게 전달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당근과 함께 더욱 풍요로운 동네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지역의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와 혁신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당근처럼 서비스명이나 기업명을 바꾸는 기업은 적지 않다. 그간 사용해 온 사명을 변경하려는 이유는 기존 사명이 기업의 미래 방향성을 담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름을 바꿔 이미지 제고에 나서겠다는 건데, 사실 서비스명 변경은 회사 경영 측면에서 꽤 위험요소가 큰 결정이다. 즉, 사람이든 기업이든 ‘이름’을 바꾸는 건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름은 곧 ‘정체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위험은 소비자를 직접 마주하는 리테일 기업일수록 더 크다.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위험이 있는데다가 인지도를 쌓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홍보 및 마케팅에도 적잖은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름을 바꾸는 게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데도 이름을 바꿨다면 그만큼 쇄신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당근이 서비스명을 바꾼 데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얼핏 당근은 스타트업 치곤 꽤 큰 성공을 거둔 플랫폼처럼 보인다.
구(區) 단위의 지역을 세분화해 반경 4~6㎞ 이내 이웃끼리 중고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당근은 국내 최대 하이퍼로컬 서비스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당근이세요?’란 신조어가 만들어질 만큼 생활 깊숙이 파고 들어온 플랫폼이다.
각종 지역 정보, 동네 사람들의 온·오프라인 교류를 위한 커뮤니티, 동네 가게 정보 등이 제공되는 국내 최초의 가장 세밀한 지역 광고 플랫폼이자 마케팅 채널로 부상했다.

◇ 당근이 서비스명 바꾼 진짜 이유,‘수익 모델 한계’
이용자 수치로 보면 압도적인 수준이다. 올해 8월 기준 누적 가입자 수 3500만명,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1800만명 이상을 넘어서며 사실상 대부분의 국민이 사용하는 생활 밀착형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전체 가구 수가 2100만개라는 걸 감안하면 집집마다 한 명은 넘게 당근에 가입한 셈이다.
2021년 8월엔 1800억원 규모의 시리즈D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당근의 기업가치는 당시 3조원으로 평가받았다. 유통 대기업인 신세계와 롯데쇼핑보다 높은 몸값이었다. 가입자가 만들어낸 엄청난 트래픽 덕분이었다. 2019년 9월 시리즈C 진행 당시 당근마켓이 기업가치 3000억원으로 인정받았던 점을 고려하면, 2년 만에 약 10배 성장한 셈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신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 2021년 기준)’의 명단에도 당당히 올랐다. 당시 총 7개 회사가 새롭게 합류했는데 그 중에서도 당근은 업력이 가장 짧았다.
현재 당근은 여전히 성장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중고거래 시장은 25조원 규모(2022년 기준)에 이른다. 중고물품을 대하는 소비자의 인식이 개선되고,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값싼 비용으로 제품을 구매하려는 이들이 증가해 시장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당근의 매출도 수직 상승했다. 2021년 257억원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499억원으로 94.3%나 뛰어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늘 상존한다. 바로 수익모델의 부재다. 중고거래의 판을 깔아주는 ‘중개’에만 집중하다 보니 돈을 버는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거래 플랫폼이라면 응당 수수료를 받아야 하는데, 당근마켓은 중고거래를 다루다 보니 수수료를 얹는 게 쉽지 않다. 중고나라와 번개장터는 중개수수료라도 받고 있지만, 당근은 그마저도 없다. 이 때문에 과연 돈을 벌 수 있는가에 대한 사업의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이 적잖게 있다.
현재 당근의 가장 큰 매출 발생처는 광고다. 수익 대부분을 광고로 번다. 지난해의 경우 당근의 광고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99.2%를 차지했다. 소상공인들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당근에 올려 판매하는 ‘상품 판매 사업’도 전개하고 있지만, 성과가 미미하다. 이렇다 보니 몸집이 커진만큼 손실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당근은 2021년 352억1341만원의 손실을 냈는데, 지난해엔 그 규모가 463억9060만원으로 커졌다. 2015년부터 시작해 8년 연속 적자다.
◇ 당근, 중고 플랫폼을 넘어 지역 커뮤니티로 확장 목표
결국 당근이 서비스명을 바꾼 건 중고거래 플랫폼을 넘어 지역생활 커뮤니티로써의 정체성을 강화함과 동시에 수익성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당근은 현재 ‘구인·구직’ ‘중고차거래’ ‘부동산 중개’ 등의 신규 서비스를 통해 이익률을 끌어올리겠단 계획이다. 중고거래 이미지가 깊게 쌓인 ‘마켓’을 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비즈니스에 걸맞은 이름으로 바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자는 취지인 것이다.
물론 당근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사명과 서비스명 변경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얻은 기업이 있는 반면, 개명 효과가 신통하지 않았던 곳도 있는 게 사실이다.
단순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 개명을 통해 이미지 제고, 정체성 강화, 미래 성장성 제시 등을 이끌어 내 이름 변경에 성공한 기업들이 다수 있다.
가장 최근 대표적인 사례는 던킨도너츠에서 도너츠를 뗀 던킨이다. 던킨은 수십년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넛 체인점을 운영하던 회사였다. 이름인 던킨 도너츠의 뜻이 ‘(커피에) 적셔 먹는 도넛’일 만큼 도넛에 진심이었다. 회사의 출발도 도넛이었다. 1946년 창업가 윌리엄 로젠버그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퀸시에서 조그만 트럭을 세워놓고 출근길 회사원에게 도넛과 커피를 팔면서 출발했다.
70여 년이 흐른 최근, 던킨은 사명에서 도너츠를 뺐다. 2018년부터 몇몇 매장의 이름을 바꾸더니, 지금은 전세계에 확산됐다. 이제 국내에서도 대부분의 매장이 던킨이다. 핵심 제품인 도너츠를 빼는 방향으로 브랜드 이름을 바꾼 파격적인 리브랜드 전략이다.
효자 상품인 도넛을 브랜드 이름에서 뺀 이유는 뭘까. 기름에 튀기고 설탕이 듬뿍 든 도넛에 대해 고칼로리에 밀가루와 설탕 범벅이라는 고객 인식이 커지면서 웰빙(well-being) 트렌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도넛의 인기로 크게 성장한 던킨은 2015년 매출 정점을 찍고 이듬해부터 하락세를 보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고열량 정크푸드로 대변되는 도넛의 인기가 식기 시작했다. 도넛을 대체할 디저트류가 다양해진 것도 도넛 사업의 위기를 불렀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건강식 수요가 더욱 급증했고, 던킨의 변신은 불가피해졌다. 당시 던킨 미국 본사는 ‘800개의 미국 매장을 폐쇄할 계획’이라고 밝힐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시장 경쟁 구도도 쉽지 않았다. 커피와 도넛을 표방했지만 커피는 스타벅스에 밀렸고, ‘맥머핀’이라는 아침 메뉴를 선보인 맥도날드 등 프랜차이즈와의 경쟁도 치열해지며 도넛까지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크리스피크림 등 경쟁업체는 던킨을 따라잡고 있었다.

◇ 던킨, 핵심 품목 ‘도너츠’ 이름서 떼고 승승장구
결국 던킨은 이름에서 도너츠를 뺐다. 제품 라인업 확대와 다양한 서비스로 확장하는 ‘뉴던킨 프로젝트’를 통해 도넛 전문 이미지에서 벗어나 간단하고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스낵킹(snacking·간단한 식사)’ 브랜드로 탈바꿈하겠다는 게 던킨의 목표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이 지난 1991년 머리글자만 딴 ‘KFC’로 개명한 것도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 튀김요리라는 걸 부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던킨은 이름을 바꾼 뒤 도넛 메뉴를 축소했다. 대신 다양한 카테고리의 디저트 음식에 도전했다. 음료는 커피를 종류별로 늘리며 커피전문점이란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커피와 음료, 스낵 등 다양한 메뉴까지 아우르는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던킨의 변신은 현재까진 성공적이다. 던킨 모기업인 던킨브랜즈의 매출과 점포 수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반응도 꽤 긍정적이다. 국내에선 올해 ‘던킨 투나잇’도 선보였다. 던킨 투나잇은 배달 및 포장 특화 메뉴다. 또한 던킨은 그릭슈바인 핫도그, 프레즐, 크리스피 치즈볼, 햄에그 잉글리쉬머핀 등 소포장 냉동가정간편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름에 튀긴 도넛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비즈니스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과감하게 이름을 바꿨는데, 개명에 성공한 사례로 남게 될 것 같다”면서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 야간에도 배달 음식을 팔 만큼 적극적으로 변신한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던킨에서 도너츠를 뗀 것처럼 월마트 역시 비슷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이다. 월마트는 2018년 월마트 스토어(Wal-mart Stores)에서 스토어라는 단어를 삭제한 월마트(Walmart)로 사명을 교체했다.

◇ 월마트, 이름 바꾸고 매출이 오르는 등 성장세
1970년 1월부터 유지해온 월마트 스토어라는 사명을 48년 만에 바꾼 것이다. 월마트 사이의 문장부호(-)도 삭제했다. 마트라는 뉘앙스를 가급적 줄이고, 온라인 웹사이트 ‘월마트닷컴(Walmart.com)’과 명칭을 일치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오프라인 매장을 뜻하는 ‘스토어’를 삭제하며 전통 오프라인 매장에 국한되지 않고 온라인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당시 월마트 측은 “우리는 고객의 선택과 필요에 따라 성장전략을 바꿔야 하는 유통업체”라면서 “온라인 쇼핑을 원하는 고객들 니즈에 맞춰 회사 이름을 바꿀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설명했다.
특히 온라인 경쟁력을 강화해 이커머스 공룡기업 아마존과 경쟁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미 월마트는 아마존과의 대결에서 패배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2015년 7월, 아마존 시가총액이 전통의 유통 공룡 월마트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한 건 상당히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두 회사의 시가총액은말도 안 되게 벌어졌다. 월마트의 시가총액이 성장 없이 4000억 달러에 머물러 있는 사이, 아마존의 기업가치는 1조3300억 달러로 성장했다. 이름에서 스토어를 뗐지만, 아직 아마존을 넘기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월마트의 개명 전략을 실패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수많은 유통업체들이 아마존에 밀려 폐업하거나 철수할 때도 월마트는 꿋꿋이 시장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월마트 매출은 6113억 달러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대비 16.7%나 올랐다. 인플레이션과 높은 금리가 유통기업에 불리한 악재인데도 고객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업의 장점을 적절히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애플ㆍLF 등 사명 변경, 신규 사업 진출에 긍정적 작용
리테일 기업이 아니면서 사명 변경을 잘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애플이 손꼽힌다. 애플은 2017년 아이폰과 애플TV를 처음 공개하면서 기업의 명칭을 ‘애플컴퓨터(Apple Computer)’
에서 ‘애플(Apple)’로 변경했다. 당시 애플의 매출 중 50%에 가까운 비중을 컴퓨터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걸 고려하면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후 역사상 최대 혁신 제품으로 꼽히는 아이폰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실적이 승승장구하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기업으로 거듭났다. 컴퓨터 제조업체에서 최첨단 스마트폰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이름을 바꾼 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아울러 테슬라도 원래 ‘테슬라모터스’였지만 2017년 2월 모터스를 빼고 지금의 테슬라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래에너지솔루션 기업으로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함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긴 시간동안 인지돼온 사명을 바꾸는 건 기업의 강력한변화 의지가 뒤따르는 일”이라면서 “사명 변경이 기업의 변화와 전환점의 실질적인 모멘텀이 되기 위해선 새로운 출발을 공표한 대로 기업의 외연만 바뀌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변화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약속의 이행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LF는 2014년 LG패션에서 사명을 바꿨다. 단순히 옷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 걸친 생활문화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였다. 패션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경영진이 식품과 유통사업 등으로 회사의 외연을 넓히자는 뜻으로 사명을 과감히 바꿨다. 바뀐 사명 LF는 ‘라이프 인 퓨처’(Life in Future·미래의 삶)의 줄임말이다. LF는 2019년 3월 부동산 금융 전문기업인 코람코자산신탁을 인수하면서 부동산과 금융 사업에 뛰어들었고, 자회사인 LF푸드를 설립해 요식업에도 진출했다. 신사업의 실적은 아직 평가를 하기엔 이르지만 기업 외연을 성공적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 사명 변경, 도리어 악재로 작용한 경우도 많아
물론 이는 일부 성공 사례에 불과하다. 이름을 바꾸고도 그에 맞는 변화를 추구하지 못해 별 볼일 없단 평가를 받는 기업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메타다.
지난 2021년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 페이스북은 회사 이름을 ‘메타(Meta)’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 경영자(CEO)가 하버드대 학생이던 2004년 대학 기숙사에서 창업한 페이스북이 17년 만에 이름을 바꾼 것이다.
저커머스 CEO는 2014년 VR HMD 기업 오큘러스를 인수하면서 일찌감치 메타버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VR·AR 등 가상공간에서 사람들을 연결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저커버그는 메타의 메타버스 사업을 담당하는 리얼리티랩스에 매년 100억달러(약 14조원)씩 10년을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메타버스 사업을 키우겠다는 메타의 야심찬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인지도를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페이스북 브랜드 가치만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적도 악화해 최근 2년 새 직원 2만명을 구조조정했다. 리얼리티랩스는 지난해 137억 달러의 손실을 봤으며 이는 메타버스 부문에서 역대 최악의 적자다. 주가도 추락했다. 한때 뉴욕증시 시가총액 10위를 차지했었는데, 지금은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한국 리테일 산업에서도 이름을 바꾸고도 신통치 않은 실적을 기록 중인 회사가 있다. 바로 컬리다. ‘당근마켓’이 ‘당근’이 됐듯, 마켓컬리는 지난해 말 ‘컬리’가 됐다. 컬리라는 상위 브랜드 아래 식품 및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마켓컬리와 뷰티 제품을 판매하는 뷰티컬리 등 두 개의 하위 브랜드로 운영 중이다. 메인 서비스 명칭을 변경하고, 기존의 마켓컬리만큼 새롭게 뷰티컬리 또한 키우겠다는 게 목표다. 기존에 마켓컬리를 운영하면서 신선식품 등 역량을 강화해온 만큼 이제는 뷰티, 생활용품 등 비(非) 식품군으로도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 컬리, 수익성 강화위해 이름서 ‘마켓’ 떼고 신사업 추진
컬리가 이름을 바꾼 것도 기업 경영 환경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름을 바꿀 당시 컬리는 추진 중이던 기업공개(IPO)가 이미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여있었다.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 IPO)
유치 당시 인정받은 4조원의 기업가치가 당시 1조원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산돼 상장 실익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가치가 줄어든 구체적 이유는 매출은 늘지만 적자가 함께 커지는 악순환의 고리 때문이다. 컬리는 새벽배송 전문 업체로 출발했지만, 사업구조 자체가 적자 부담이 컸다. 신선식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는 만큼 원가 부담이 큰 데다 새벽배송의 특성상 물류비·인건비가 많이 들었다. 여기에 가전 및 전자기기 등 취급 품목을 확대하면서 이익보다 몸집만 키운 게 악수로 돌아왔다.
그 결과 컬리의 매출은 2020년 9531억원에서 2021년 1조5614억원으로 늘었지만, 영업적자 역시 2020년 1163억원에서 2021년 2177억원으로 크게 뛰었다.

따라서 컬리가 마켓을 뗀 것도 수익성을 강화하겠다는 전략 차원으로 풀이된다. 재고 관리가 쉽고 단가가 높은 화장품 시장에 진출해 성과를 내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후 컬리는 대세 아이돌 블랙핑크의 제니를 모델로 기용하고 적극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뷰티컬리는 개시 이후 9개월간 누적 구매자 수 300만명, 주문 건수 400만건을 돌파하는 등 성장하고 있다. 에스티로더·랑콤·시슬리 등 글로벌 뷰티 브랜드부터 설화수·헤라·후 등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도 입점시키며 순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컬리는 여전히 적자 기업이다. 2022년 2분기 1206억원(이하 누적 기준)까지 쌓였던 영업적자를 1년 만인 올 2분기 777억원으로 35.5% 줄이는 덴 성공했다. 다만, 매출이 같은 기간 1조276억원에서 1조174억원으로 감소한 건 충격적인 일이었다. 매출 성장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매출이 꺾였다는 건 앞으로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컬리가 야심차게 노리는 국내 화장품 시장이 이미 브랜드 수만 2만개가 넘는 ‘레드 오션’이란 점에서 미래 전망을 밝게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산업에선 꼭 컬리여야 하는 걸 설득하지 못했다”면서 “소비자로선 컬리 말고도 올리브영, 백화점 등 대체 채널이 워낙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례들을 따져보면 결국 최근에 이름을 변경한 당근과 컬리의 개명 전략이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이름은 그 기업을 대표하는 핵심 언어이자 비전과 철학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사명이 가진 의미가 큰 만큼 사명 변경은 리스크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당근은 애초 본업인 중고거래에서 돈을 버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신사업 추진으로 돈 들어갈 데가 많아졌다. 따라서 당분간 컬리처럼 적자 구조를 유지할 가능성도 크다.
IT 업계 관계자는 “이름을 바꾼 후 당근은 최근 모임과 예약 서비스 등을 새롭게 런칭해 당근에 들어와야 할 이유를 점점 늘려 나가고 있다. 하지만 시장을 선점한 사업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아직 확실하게 이길 만한 ‘특별한 무기’가 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큰 결단을 내리고 새롭게 도전하는 만큼 서비스들이 잘 안착되고, 플랫폼 전체가 이익이 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