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브랜드숍 시대를 연 화장품 기업들이 좀처럼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과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악재로 현재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브랜드는 회복 불능 상황에 이르러 회생의 길을 걷는 곳도 있다.
중국은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경제보복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창 K-뷰티 성장을 누리고 있던 국내 화장품 업계는 중국의 몽니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K-뷰티의 성장은 기본적으로 대 중국 수출을 들 수 있다. 일명 ‘보따리상’으로 불리는 ‘다이궁(代工)’의 역할은 적지 않았다. 명동과 면세점에서 거의 물건을 사재기를 하듯 가져간 그들이었지만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중국 내 한류 금지령)’에 의해 한국 방문조차 쉽지 않았다. 중국의 단체관광 자체가 금지되면서 이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명동 상권은 현재까지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을 하는 주요 브랜드숍을 보면 미샤, 스킨푸드, 토니모리, 클럽 클리오, 이니스프리, 에뛰드 등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토니모리는 지난 한 해 1146억원의 매출을 거둬들였다. 전년 보다 1% 소폭 증가한 규모다. 하지만, 토니모리의 2016년 실적은 2,300억원을 넘어설 정도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호황기를 누렸었다.
토니모리 제품의 장점은 무엇보다 가성비다. 높은 품질력을 지녔음에도 중저가 가격대는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사드 보복과 빠르게 변화하는 유통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내리막길을 걷는 처지에 놓였다.
2017년 이후부터 토니모리의 실적 지표는 긍정적이지 못했다. 2017년 매출은 전년대비 11.7% 하락했고, 영업손실은 19억원에 이르렀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매출은 4년 연속 하락했고, 영업손실은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2020년 255억원에 이르던 영업손실이 2021년 135억원으로 줄어든 것이 희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 토니모리, 오프라인 유통망 감소ㆍ온라인과 해외 시장 공략

토니모리가 이 같은 희망의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유통시장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로드숍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버리고 온라인 시장에 뛰어
든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전국의 브랜드숍 점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온라인에 치중한 나머지 이커머스 등에서 오프라인 매장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올려놓아 빈축을 샀다.
현재 토니모리의 오프라인 매장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명동 토니모리 매장은 문을 닫은지 오래다. 화장품 브랜드숍에 있어 명동 매장은 상징성이 있는 곳이지만 손님이 없는 곳에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토니모리는 현재 오너 경영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경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토니모리는 최근 주주총회에서 김승철 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이후 열린 이사회에서 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김 사장은 1989년부터 2007년까지 약 19년 동안 아모레퍼시픽에서 영업 마케팅부문에 몸담았다. 이후, 2008년 토니모리로 소속을 옮긴 김 사장은 마케팅과 유통에 힘쓰며, 토니모리가 상장기업으로 거듭나는 데 힘을 보탠 바 있다.
2017년부터는 토니모리의 글로벌 자회사 총괄법인장을 역임, 글로벌 매출 견인에 힘써왔으며 이러한 경영관리 능력과 신사업 운용 전략이 탁월함을 인정받아 최근 토니모리 사장으로 선임됐다. 토니모리는 작년부터 글로벌 사업 부문과 디지털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략을 펼쳐왔다.

자사몰의 대대적인 리뉴얼 작업과 외부 온라인 유통망 확장을 바탕으로 디지털 채널 매출 극대화를 위해 힘썼으며, 다양한 아세안 H&B 채널을 공략하고 유럽과 미국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이 같은 투 트랙 전략은 토니모리 수익성 개선에 주효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해외 시장 공략의 경우 4월에는 대만 왓슨 입점했고, 6월 중에는 일본 최대 종합 쇼핑몰인 라쿠텐 및 중동 최대 디지털 커머스인 부티카에 입점을 앞두고 있다.
김 사장은 이 같은 전략을 더욱 강화해, 향후 미국 디지털 채널 아마존을 필두로 얼타, 입시, 타겟, 월마트까지 시장 확장을 꾀하며 매출 고성장을 위해 더욱 힘쓸 계획에 있다.
이와 더불어 올해는 온·오프라인 영업의 성장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친환경, 비건 등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제품을 적극 개발하고, ‘튠나인’을 비롯한 신사업 활성화에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특히, 토니모리가 작년에 런칭한 프리미엄 클린 뷰티 브랜드 ‘튠나인’은 최근 떠오르는 염색 샴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상반기 매출을 견인하겠다는 세부 목표도 설정했다.
◇ 에뛰드, 영업 적자 속 면세점 축소ㆍ중국 오프 사업 중단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로드숍 브랜드 에뛰드는 국내 주요 면세점에서 철수하는 분위기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에다 코로나19 영향까지 겹치면서 수년간 영업적자가 이어지자 내린 조치
이다.
에뛰드는 3월 신라·신세계면세점에서 철수했고, 롯데면세점에서도 퇴점수순을 밟고 있다. 다만 현대백화점면세점에서는 영업을 이어간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에뛰드 브랜드 정책으로 퇴점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철수 시점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1세대 로드숍을 대표하는 에뛰드는 2000년대 초중반 미샤, 스킨푸드, 더페이스샵 등과 함께 ‘K-뷰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지난 2017년 한한령(한류제한령)과 코로나19 장기화에 타격을 입으면서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여기에 헬스앤뷰티(H&B) 스토어의 성장과 온라인 구매 확산세도 로드숍 매출 부진에 한몫했다.
에뛰드의 매출은 2016년 3166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7년 2591억원, 2019년 1800억원, 지난해에는 1056억원으로 떨어졌다. 2018년에는 262억원이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2016년 500개에 달했던 오프라인 매장은 2020년 기준 174개로 줄었다.
지난해 초에는 중국에 남아있던 에뛰드 매장 610개을 모두 폐점하며 진출 9년 만에 오프라인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지난해 5월부터는 매장 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줄인 화장품 자판기를 KTX 서울역과 지하철 역사 내부에 설치하기도 했다.

5년간 부진한 실적이 이어지자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9월 전략실 출신의 이창규 대표를 선임하며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에는 에뛰드 자사몰 내 화장품 판매를 중단했다. 비수익 채널을 정리하고 라이브커머스 등 다른 유통망을 개척하기 위한 판매채널 효율화로 보인다.
에뛰드 관계자는 “모든 면세점에서 철수하는 건 아니다”라며 “요즘 면세 사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해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 LG생활건강, 더페이스샵에서 네이처컬렉션으로 사업 재편
LG생활건강은 시장 변화에 발맞춰 편집숍 키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 부진이 지속되자 ‘더페이스샵’ 매장 대부분을 편집숍인 ‘네이처컬렉션’으로 전환하며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생활건강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네이처컬렉션의 매장 수는 460개로 더페이스샵(398개)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더페이스샵은 1세대 로드숍으로 2018년 매장 수가 800여개에 달했지만 온라인으로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 이동하고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불황을 겪고 있다. 이에 LG생활건강은 더페이스샵에서 네이처 컬렉션으로 중심축을 이동하는 사업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사진=테넌트
연도별로 살펴보면 이 같은 변화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제공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네이처컬렉션의 매장 수는 493개(가맹점 429개, 직영점 64개)로 나타났다. 네이처컬렉션은 LG생활건강의 뷰티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으로 지난 2016년 2월 광화문에 1호점을 연 이후 2018년 매장 수가 369개(가맹점 322개, 직영점 47개)에서 2019년 486개(가맹점 415개, 직영점 71개)로 늘어났다.
반면 더페이스샵의 매장 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더페이스샵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신규 개점이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더페이스샵의 매장 수는 2018년 804개(가맹점 270개, 직영점 534개)에서 2019년 598개(가맹점 129개, 직영점 469개), 2020년 481개(가맹점 77개, 직영점 404)로 감소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3년간 직영점 수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가맹점은 70% 이상 대폭 줄었다.
이처럼 네이처컬렉션이 더페이스샵 매장 수를 앞지를 수 있었던 것은 더페이스샵에서 전환한 점포들 덕분이다. LG생활건강은 전환 점포 비중을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실제 더페이스샵 가맹점 가운데 대부분이 네이처컬렉션으로 간판을 바꿔 단 것으로 확인된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이 지속되면서 단일 브랜드만을 취급하는 로드숍 매장 운영이 어려워지자 가맹점주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매출을 내고 있는 편집숍으로 매장 전환에 나선 것이다.
최근 화장품 시장은 편집숍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현재 업계 1위인 올리브영은 일찌감치 오프라인 매장을 확장하며 고객 접근성을 높였고 선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올리브영의 매장수는 2020년 기준 1259개로 2년 전인 2018년(1198개)과 비교해 5% 증가했다. 인기 브랜드를 한 곳에 모아 판매하는 편집숍들이 빠른 성장을 거듭하면서 단독 로드숍들은 화장품 시장에서 설 자리가 좁아지게 됐다.
더페이스샵 매출액만 봐도 로드숍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더페이스샵 가맹점의 연간 평균 매출액은 2018년 2억4527만원에서 2019년 3억1148만원으로 증가했지만 2020년 1억 6754만원으로 다시 감소했다. 이 기간 네이처 컬렉션도 2018년 2억2675만원에서 2020년 1억7033만원으로 가맹점 평균 매출이 줄어 들었지만 2020년 기준으로 더페이스샵보다 더 많은 매출을 벌어들였다.

LG생활건강 측은 “시장 환경 변화에 발맞춰 더페이스샵 매장을 편집숍 매장으로 전환하고 있다”면서 “더페이스샵은 매장 수의 대부분이 대형마트 내에 있는 직영점 매장이며 가맹점 점주 분들이 운영하는 로드샵 더페이스샵 매장은 대다수가 네이처컬렉션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의 온라인 전환도 네이처컬렉션이 주도할 전망이다. LG생활건강은 앞서 지난해 7월 네이처컬렉션과 더페이스샵의 직영 온라인몰을 통합 플랫폼으로 개편해 선보였다. 통합 플랫폼은 고객이 직영몰에서 제품 구입시 더페이스샵·네이처컬렉션 가맹 매장을 직접 선택하면 해당 가맹점에서 제품을 배송하는 구조다. 이를 앞세워 온·오프라인 시너지도 높여 나갈 계획이다.
네이처컬렉션 관계자는 “지난해 7월 가맹점이 매출과 수익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온라인 통합 플랫폼을 선보이고 오프라인 매장과의 시너지 효과에 힘을 쏟고 있다”면서 “향후 지속적으로
가맹점과의 상생을 도모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원브랜드숍 한계성 봉착, 편집숍 형태로 변화 도모
국내 1세대 로드숍 브랜드 ‘미샤(에이블씨엔씨)’는 사모펀드의 품에 안겨 재도약을 꿈꿨으나 녹록치 않는 현실에 마주하고 있다. 에이블씨엔씨가 창업주의 품을 떠난 건 2017년의 일이다. ‘샐러리맨 신화’로 일컬어지던 서영필 전 에이블씨엔씨 회장은 자신의 지분을 사모펀드 IMM PE에 매각했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지금 에이블씨엔씨의 최대주주(지분율 59.2%)인 사모펀드 IMM 프라이빗에쿼티(이하 IMM PE)가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본격화할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3300원 화장품’ ‘착한 화장품’이란 별칭과 함께 2000년대 로드숍 열풍을 일으킨 ‘미샤’.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에 다시금 시장의 눈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6월과 10월 에이블씨엔씨에 합류한 김유진 대표와 신유정 상무(브랜드전략부문장)가 있다. 두 사람은 앞서 IMM PE가 보유하고 있던 커피전문점 할리스(현 KG할리스에프앤비)를 KG그룹에 매각한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김유진 대표는 IMM PE 출신으로 2017년 할리스 대표로 부임했다.

이후 3년 만에 매출액을 3배로 끌어올리며 할리스 매각을 이끌어냈다. 신유정 상무는 2018년 할리스 브랜드전략본부장으로 입사해 김 대표를 도왔다. 매각작업 완료 후에도 할리스에 남아 10개월여간 대표직을 맡았다.
이들의 활약으로 IMM PE는 할리스 매각을 통해 투자금 대비 100%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에이블씨앤씨 매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에이블씨엔씨의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2012년 고점(매출액 4552억원ㆍ영업이익 536억원)을 찍은 이 회사의 실적은 감소세를 거듭했다.
IMM PE가 인수한 2017년 이후엔 상황이 더 악화했다.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3075억원, -680억원으로 2017년 대비 17.6%, 507.1%나 감소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영업적자 120억원을 기록했다. 실적을 반영하듯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2017년 7월 21일 2만3500원이던 주가는 현재 7020원(5월 24일)으로 크게 하락했다.

물론 실적이 악화한 덴 중국의 사드(THA AD) 보복조치, 코로나19 사태 등 외부 변수가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외부 변수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IMM PE 인수 이후 4년간 대표가 8번이나 교체될 만큼 ‘전략 실패’가 반복됐던 게 치명타였다.
대표적인 게 ‘볼트온(bolt-on)’ 전략이다. 볼트온 전략이란 유사한 업종의 기업을 인수해 외형을 키우는 방식으로, 사모펀드가 인수기업의 기업가치를 키우는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다. 에이블씨엔씨는 2018~2019년 중소규모 화장품 업체 3곳을 잇따라 인수했다. ‘돼지코팩’으로 알려진 ‘미팩토리’, 수입화장품 유통업체 ‘제아H&B’,더마화장품 업체 ‘지엠홀딩스’ 등이다.
기존 미샤ㆍ어퓨 등 단일 브랜드숍의 한계를 벗어나겠다는 목표에서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제아H&Bㆍ지엠홀딩스는 자본잠식에 빠질 만큼 경영상황이 악화됐다. 결국 에이블씨엔씨는 관리비용 절감 등을 목적으로 지난 10월 제아H&B를 흡수합병했다.
‘유통채널 다변화’를 통해 매출을 늘리려는 전략도 쓴맛만 남겼다. 에이블씨엔씨는 2019년 6월 서울 이화여대 앞에 멀티숍 ‘눙크(NUNC)’ 1호점을 열었다. 미샤ㆍ어퓨 등 자사 브랜드뿐만 아니라 국내외 200여개 브랜드 8000여개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이다. CJ올리브영과 같은 H&B스토어를 표방한 셈이었다.

2020년 8월에는 비슷한 콘셉트를 기존 미샤 매장에도 적용했다. 미샤 매장을 ‘미샤플러스’로 교체하고 계열사 제품뿐만 아니라 23개 타사 브랜드, 1200여개의 제품을 함께 판매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미샤 가맹점의 반발을 무릅쓰고 미샤 주요 제품을 CJ올리브영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눙크는 사실상 매장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2020년 40여개였던 눙크 점포 수는 현재 15개로 줄었다. 미샤 점포 수 역시 2018년 698개에서 2020년 407개 로 감소했다.
에이블씨엔씨에 낙관적 전망이 없는 건 아니다. 일본 시장에서 10대를 중심으로 미샤 ‘쿠션 파운데이션’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 건 긍정적 시그널이다. 회사 관계자는 “일본법인은 2020년 코로나19 악재에도 386억원이라는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다”면서 “향후 해외사업 저변 확대, 온라인 강화, 경영 효율화를 꾸준히 추구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1세대 로드샵의 대표 격인 이니스프리는 지난 2010년 아모레퍼시픽 내 사업부에서 독립한 이후 5년간 급성장했다. 2016년에는 국내외 매출이 1조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2017년 이후 로드샵에 대한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서서히 하락세를 보였고,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더욱 부진했다.
이니스프리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몸집 줄이기와 디지털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니스프리는 2020년 중국 내 오프라인 매장 100개를 정리하는 등 체질개선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디지털 전환 등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모양새다.
◇ 사모펀드에 매각된 ‘미샤’… 반전은 없어

한편, 로드숍의 위기에는 MZ세대에 대한 대응의 부실함도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MZ세대란 90년대 중반 이후에 출생한, 현재 가장 젊은 소비자층이다. 특히, 세계적으로도 MZ세대는 주요 소비층으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시장조사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실시한 ‘화장품 구매 행태 및 로드숍 vs 드럭스토어
U&A 조사’에 따르면 Z세대(1020)는 화장품 구매 시 매장 방문 재미, 가격 민감, 다양한 제품, 소비자 후기와 평가 등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13세~59세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먼저 화장품 구입 시 고려하는 요인은 성능, 가격, 사용경험, 사용후기 등이었다. 특히 Z세대는 가격(10대 62% 20대 53.5%)과 할인 여부(10대 44.5% 20대 50.5%)에 가장 민감했으며, 사용자 후기와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10대 47% 20대 46%)가 확인됐다.
실제 소비자 후기가 별로 없는 화장품의 구매를 꺼려하는 태도(10대 84.5% 20대 89%)를 보였다. 그렇다고 온라인의 평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아 후기와 뷰티 블로거/유튜버가 추천한 제품은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생각은 각각 42.6%, 25.3%에 그쳤다. 또 응답자 79%가 SNS에서 소정의 돈을 받고 쓰는 홍보 및 광고후기가 많다고 생각했다.

이어 Z세대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매장(10대 58.7% 20대 47.6%)에서 화장품 구입 비중이 높았다. 드럭스토어(10대 74.5% 20대 80.5%)와 로드숍(10대 84% 20대 65.5%) 구매 경험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오픈마켓과 멀티브랜드숍, 소셜커머스, 백화점, 홈쇼핑에서의 구입은 적었다. 3040 여성은 오픈마켓에서, 50대 여성은 백화점과 홈쇼핑에서 화장품을 구입하는 특성을 보였다.
로드숍 불황은 응답자 2명 중 1명이 체감했다.(47.9%) 로드숍의 인기 하락 이유로는 ‘화장품 판매처의 다변화’라는 의견이 많았다. 온라인 이용과 오프라인 매장이 많아지면서 로드숍의 경우 세일기간이 아니면 소비자들이 찾지 않거나(43.5%) 가격 경쟁력이 없다(40.6%)는게 드러났다.
특히 여성 소비자의 61%가 둑이 단일 브랜드 로드숍 매장에 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 온라인 유통이 확대되며 원브랜숍이 몰락했다는 내용에 반하는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소비자들 중 드럭스토어를 이용한 이는 94.1%나 됐다. 또 예전보다 이용이 증가했다(39.3%)는 응답이 감소했다(14%)는 것에 비해 많았다. 소비자들은 매장 방문 재미(49.5%), 다양한 제
품(46.8%)에 높은 점수를 줬다. 한 번에 다양한 물건을 구매하고(47%) 화장품 외 생활용품 구비(39.7%) 등의 이유로 많이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화장품 이외 제품(간식, 식음료 25.6%, 생활잡화 21.8%)도 많이 구입해 확장성도 밝게 나타났다.
이번 조사 결과로 한국형 Z세대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즉 가성비를 중시하며, 브랜드보다 상품 자체를 더 중요시 여긴다는 점이다. 여기에 1인 가구 증가와 더불어 ‘사생활 보호’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성비와 다양성, 호기심 자극 측면에서 Z세대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로드숍 위기를 자초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로드숍의 위기는 이제 ‘도태’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앞서 세일기간에만 로드숍을 찾는다는 소비자 조사 결과는 평소에는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가는 쇼윈도로 추락했다는 의미다. 새롭게 주류 소비자층으로 떠오르는 Z세대의 눈길을 끄는 데서 로드숍 회생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브랜드숍이 몰락한 데에는 애초 자체 시장 분석이 잘못된 부분이 크다”며 “다양함과 놀이를 좋아하는 소비층에 대한 재분석과 이해가 먼저 있어야 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