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업계에 새로운 먹거리 창출로 기대를 모은 맞춤형 화장품 제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맞춤형화장품’이란 개인의 피부타입, 선호도 등을 반영해 판매장에서 즉석으로 제품을 혼합·소분한 제품을 말한다.

2020년 3월 14일 화장품법에 의거한 맞춤형화 장품 판매업, 맞춤형화장품 조제관리사와 관련된 정책이 시행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맞춤형화장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자는 ‘맞춤형화장품 판매업’을 식약처 관할 지방청에 신고해야 하며 판매업자는 국가자격 시험을 통과한 ‘조제관리사’를 둬야 한다.
이 법이 처음 도입될 때만해도 화장품 업계에서는 다양한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일자리와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화장품 업계는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인한 수출 침체, 내려막길을 걷기 시작한 오프라인 매장 등 우려되는 상황이 연출되던 시기였다.
특히 브랜드숍으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 유통의 성장으로 하락세로 돌아서는 상황이었다. 이에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고민을 거듭해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맞춤형화장품 제도는 업계가 안고 있는 다양한 고민들을 해결할 실마리로 인식됐다.

이에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한 국내 대표 기업들도 사업 참여 의사를 밝혔고, 정부가 관련 사업 특구를 지정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해당 정책은 시행 1년 만에 대해 졸속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 위주로 마련된 맞춤형화장품 사업이 힘을 못쓴 탓도 있지만 시행 과정의 엇박자는 문제로 제기된다.
논란으로 제기된 내용 중 하나는 소분과 관련된 정책 변화였다. 과거 2007년 식약처(당시 식약청)는 화장품을 임의로 만드는 즉, 소분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관련 사업자를 단속했다. 정부는 개별적 활동이 화장품의 원료관리나 품질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불법으로 규정한 행위가 10여년이 흐른 뒤 맞춤형화장품이라는 이름으로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사장된 시장이 다시 형성되는 것은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특히 기존에 불법으로 규정했던 내용들을 다시 시행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법률 간 충돌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행 맞춤형화장품은 시설, 성분과 원료를 특정해 1인 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사업 추진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실제로 최근 맞춤형화장품을 내세운 기업이나 브랜드는 향수를 제외하면 아모레퍼시픽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이 전부다. 특정 시설과 사람은 비용 부담을 가중시켰고, 성분과 원료는 맞춤형화장품의 벽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
이와 함께 이미 허가를 받은 원료와 성분으로 만드는 맞춤형화장품은 화장품을 섞어 쓰는 레이어링과 비교해 차별점도 없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레시피만 보면 만들 수 있는 제품들인 것이다. 이는 화장품 업계 경쟁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DIY 키트를 파는 과거가 더 낫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아모레, 첫 도입 제안부터 현재까지 맞춤형화장품 시장 선도

아모레퍼시픽은 맞춤형화장품 제도 도입이 처음으로 거론된 2016년부터 적극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해왔다. 2016년 4월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아이오페에서 고객들의 피부 측정을 통해 맞춤형화장품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전문적인 피부 측정과 피부 솔루션을 경험할 수 있는 연구 공간인 ‘바이오 랩(IOPE BIO LAB)’에서 피부 측정 전문가로부터 얼굴 전체 측정과 평가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는 베이직 프로그램(60분)과 얼굴 전체와 국소 부위 측정은 물론 박사급 연구원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인텐시브 프로그램(90분)을 런칭한 것이다.
이어 2019년 말에는 브랜드 라네즈에서 고객이 14가지 입술 안쪽 색상과 13가지 바깥쪽 색상을 조합한 총 182가지의 컬러 중 하나를 선택해 본인만의 ‘마이 투톤 립 바’제품을 만들 수 있는 맞춤형화장품을 내놓았다. 특히 이 서비스는 제품 용기에 고객이 원하는 메시지를 각인해주는 인그레이빙(engraving) 서비스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에도 아모레퍼시픽은 다양한 서비스 업그레이드와 색조부터 스킨케어까지 다양한 맞춤형화장품을 시도했다.
하지만 2020년 맞춤형화장품 제도가 공식적으로 진행될 때까지 오프라인 중심의 사업 운영과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시간, 낮은 단가 등은 수익과 효율성 면에서 단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사업에 뛰어들었던 일부 기업들은 시범사업을 끝으로 사업을 철수했고, 아모레퍼시픽만 현재까지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실정이다.
◇ 색조부터 스킨케어까지 다양한 시도 진행 중

수익과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도 불구, 아모레퍼시픽의 맞춤형화장품 시장 공략 의지는 전사적 차원으로 점차 확대됐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문제점으로 지적돼오던 수익과 효율을 조금씩 개선하는 모양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초 아이오페 랩을 통해 내 얼굴 골격에 맞춰 즉석 제조되는 ‘테일러드 3D 마스크’와 개인의 피부 고민에 딱 맞춘 ‘테일러드 세럼’으로 구성된 테일러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테일러드 3D 마스크’는 최신 3D 기술로 매장에서 얼굴 골격과 사이즈를 측정한 후 3D 프린터를 이용해 즉석에서 하이드로 겔 마스크를 만들어 제공하는 서비스다. 업계에서는 고도화된 기술 적용으로 시간 단축에 큰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이에 앞서 2020년 10월에는 라네즈 명동 쇼룸을 리뉴얼 오픈하면서 2층에 ‘비스포크 크림 스킨(BESPOKE CREAM SKIN)’공간을 구축, 단 10분만에 맞춤형화장품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 3월에는 온라인에서도 피부 솔루션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 ‘랩투미(LAB To Me)’를 통해 집에서도 맞춤형화장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고객들은 간편하게 집에서도 맞춤형화장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시간 부담과 수익성 확보가 가능하도록 했다.
해당 서비스들은 시간과 인력 단축으로 수익성을 높이고, 편한 쇼핑으로 맞춤형화장품 대중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초석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 4차산업혁명과 결합된 진화된 형태의 맞춤형화장품 제안

아모레퍼시픽의 맞춤형화장품에 대한 투자는 4차산업혁명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 4월, 아모레퍼시픽은 아모레성수에 로봇이 나만을 위한 맞춤형 파운데이션, 쿠션 제조를 해주는 신개념 서비스 ‘베이스 피커(BASE PICKER)’를 선보였다.
아모레퍼시픽이 3년간 카이스트와 연구 개발을 통해 탄생한 ‘베이스 피커’서비스 현장에서는 카이스트 특허 기술을 탑재한 피부톤 측정 프로그램과 메이크업 전문가의 상담이 제공된다. 이를 통해 고객은 본인의 피부에 적합한 컬러와 제형(글로우/세미 매트)을 선택하고, 즉석에서 만든 맞춤형 파운데이션과 쿠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특허 출원한 제조 로봇은 현장에서 빠르고 위생적인 공정으로 개인 맞춤화된 제품을 생산한다. 또한 직접 선택한 색상과 제형으로 만든 파운데이션 샘플 3가지를 사용해 본 후, 원하는 맞춤 파운데이션, 쿠션 본품을 주문할 수 있는 비대면 서비스도 제공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이 기술을 적용한 맞춤형 입욕제 제조 서비스 ‘배스봇(bathbot)’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모레스토어 광교에서 선보였다. 배스봇 서비스 역시 고객이 원하는 향과 색을 담은 입욕제를 현장에서 상담을 통해 고객이 선택한 제품을 로봇이 바로 제조해 주는 형태다.
고객은 키오스크에서 간단한 심리 테스트를 거쳐 현재 본인에게 필요한 입욕제, ‘배스밤(bathbalm)’을 추천받거나 원하는 제품을 직접 고를 수 있다. 배스밤을 추천하는 과정에는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서 향이 심신의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를 반영했다.
이를 바탕으로 스윗 플로랄, 포레스트 허브, 라벤더 힐 등 개성 있는 향과 색을 지닌 14가지의 입욕제 중에서 원하는 제품을 고르면 로봇이 즉석에서 입욕제를 만들어준다. 제조 시간은 약 2분 정도 소요되며, 고객들은 현장에서 로봇이 위생적으로 맞춤형 입욕제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도 있다.
◇ 맞춤형화장품 위한 로봇 제작까지

아모레퍼시픽은 맞춤형화장품을 통해 새로운 사업 모델도 제안한다. 맞춤형화장품에 환경에 대한 소비자 니즈를 반영한 리필 화장품과 건강 기능식품으로 확대된 맞춤형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먼저 아모레퍼시픽은 2020년 10월,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의 리필 매장인 아모레스토어 광교를 오픈해 샴푸와 바디워시 제품의 내용물을 소분해 판매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올해 4월에는 이마트 자양점에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모레스토어 헤어&바디(AMORE STORE Hair&Body)를 오픈해 관심을 모은다.
아모레퍼시픽이 맞춤형화장품의 소분 제도와 환경 보호 니즈를 반영해 선보인 리필스테이션은 해피바스, 미쟝센 브랜드의 샴푸와 바디워시 10가지 제품을 내용물만 소분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재활용 플라스틱(PCR PET)으로 만든 리필 전용 투명 용기를 매장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고, 내용물도 경제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고객들이 정기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환경적인 메시지도 강해 맞춤형화장품의 새로운 사업 모델 탄생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대표 이너뷰티 솔루션 브랜드 바이탈뷰티를 통해 개인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추천·판매 서비스인 ‘MY 바이탈뷰티’를 아모레스토어 광교점에서 첫선을 보였다.
‘개인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추천·판매 서비스’란 개인의 건강 상태, 생활습관 등을 기반으로 보충이 필요한 영양소를 고려해 건강기능식품을 추천하고 소분하여 판매하는 서비스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기존에 불가능했던 건기식 완제품의 소분 및 재포장을 통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꼭 맞는 ‘1일 1포’와 같은 건기식 솔루션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 다양한 사업모델 제시 통해 사업 영역 확대 움직임

최근 아모레퍼시픽의 공격적인 투자로 맞춤형 화장품을 선도하면서 관련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란 예측과 반대로 대기업들의 독점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모레퍼시픽이 전개 중인 맞춤형화장품 사업들이 대부분 막대한 설비 투자가 선행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간단하게 맞춤형화장품을 제조할 수 있는 향수를 제외하면 중소기업들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다.
결국, 맞춤형화장품에 대한 식약처의 세부 세칙들이 빠르게 나와야 이에 따른 사업 전개 유무를 기업들이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동시에 정부의 관련 사업 육성을 위한 다각적인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맞춤형화장품 제도는 분명, 국내 화장품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며, 최근 아모레퍼시픽의 행보 역시 관련 산업 활성화에 큰 홍보 효과와 대중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강력한 규제가 동반될 경우 중소기업들에게는 어려운 시장이 될 공산이 크고 자금력이 있는 기업들 중심의 사업 발전이 예상되기 때문에 정책적인 지원뿐 아니라 온오프라인 사업 확대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맞춤형 화장품 … 기회로 삼는 기업들 다양

지난해 3월에서야 맞춤형 화장품 제도가 생겼지만 국내에서는 오래 전부터 관련 화장품을 도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기업이 있다.
1987년에 독일에서 설립된 MBK 화장품 역시 맞춤형 화장품 시장의 유명 브랜드 중 하나이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형 처방 화장품’을 컨셉트로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에스테틱숍을 중심으로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MBK 화장품은 독일에서 의학을 전공한 케트너 여사가 창립했다. 세균학 등을 전공하다 자신의 고향인 룩셈부르크에서 피부관리실을 오픈한 그는 일반 코스메틱 제품으로는 개선되지 않는 피부 문제점 해결책을 고민했다. 자신이 공부한 세균을 기초로 해 만든 화장품들을 고객들에게 임상하며 현재의 MBK 화장품을 만들게 됐다.
사실 MBK 화장품이 국내 맞춤형 화장품 시장에 시사하는 부분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난다. 현재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는 이 화장품이 10여년 전에 도입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일찍 도입된 탓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 맞춤형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MBK 화장품을 국내에 유통하고 있는 팜스아이비씨는 현재 매주 설명회를 개최하고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팜스아이비씨 박상미 부장은 “MBK는 단지 외적인 케어에 국한된 것이 아닌 한 인간을 종합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모든 미적 문제의 근원을 규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고객의 실질적인 피부 문제점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다”고밝혔다.
현재 MBK는 앰플, 크림 등 고객의 피부 타입에 따라 선택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을 다양하게 공급하고 있다.
◇ 맞춤형 화장품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기업 많지 않아

많은 기업들이 맞춤형 화장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의지를 보이지는 않는다. 보통 시장이 형성되기 전 선점효과를 누리려고 경쟁을 하는 일반적인 모습과는 대비되는 상황이다. 그만큼 맞춤형 화장품 시장에 대한 불안요소가 크다는 방증이다.
처음 맞춤형 화장품이 거론됐을 때 새로운 먹거리 창출이라는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맞춤형 화장품이라는 영역이 생기면서 이와 관련된 영역에 대한 규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직까지 맞춤형 화장품 제도에 대한 평가를 내기에는 이른감이 없지 않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화장품 산업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처음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